본문 바로가기

시나리오

영화 리뷰, 영화 <조커>를 보고 나서 <택시 드라이버>를 다시 봤다

 

 

결론적으로 조커는 재밌는 영화였다. 그동안 DC 유니버스의 안 좋은 행보와 무색하게 조커는 재밌고 드라마틱하고 그동안 봤던 DC 영화와는 다른 색다른 영화였다.


영화 조커는 생각보다 간단한 맥락이다. 바로 조커라는 빌런의 탄생기를 다룬 것이다. 이는 히어로 영화사에서 아주 색다른 시도고 난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DC 유니버스가 나아갈 방향을 마치 마블의 <아이언맨>처럼 제시해준 거라고 생각된다. 마블은 영웅의 탄생을 다뤘지만, DC는 빌런의 탄생으로 정반대의 방향을 가면서도 올곧은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조커는 오히려 내게 DC 영화의 미래에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영화였다. 아이언맨처럼 말이다.

 

 

다만 영화 내내 택시 드라이버를 떠올리지 않고 영화를 보기엔 너무 힘들었다. 물론 영화를 보기 전, 택시 드라이버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먼저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다시 <택시 드라이버>를 보고 난 후엔 확신이 들게 됐다. 조커는 택시 드라이버에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

 

 

 

 

- 약 스포일러가 포함

조커를 보면서 광기에 관해 얘기를 많이 하는데 실상은 전혀 달랐다. 조커는 본연의 광기가 아닌 사회적으로 비롯된 광기로, 이 부분은 택시 드라이버와 큰 차별점을 두게 된다. 사실 광기라고 할 것도 없다. 조커의 스토리는 생각보다 무난했으며 조커는 미쳐버릴 이유가 타당했다.

 

 

진짜 트루 광기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다.

관객은 끊임없이 이 택시 드라이버의 행동에 수많은 질문과 의문을 받으며 개인의 광기와 뒤틀린 정의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그러나 조커는 영화 속 고담이라는 사회가 아서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던진다. 관객은 그저 바라볼 뿐이다. 결국 관객은 특히 조커의 팬이나 DC 팬은 조커의 탄생에 희열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도덕적 관념이 들어가는 건 의미가 없다. 

조커는 단지 '빌런'을 다루는 것이다. 빌런은 나쁜 놈이고 그 자리에 복잡한 주제는 들어갈 필요가 없다. 단지 우리는 조커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커'의 탄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반대로 택시 드라이버의 결말에선 조커와 다르게 영웅이 탄생한다. 그러나 관객은 마지막까지도 딜레마를 가진 채 멍하니 영화 끝까지 보게 된다. 트래비스는 정말로 옳은 일을 한 것인가? 아닌가? 이것은 관객과 영화 사이의 끝 없는 딜레마를 만든다. 그 딜레마는 단지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는 게 아닌 관객을 여운에 빠지게 한다. 그 딜레마를 만든 트래비스의 광기야말로 영화사에서 한 획을 그은 광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택시 드라이버는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화자 된다. 

 

 

 

 

내가 조커를 보면서 느낀 아쉬운 점은 그 점이다.
조커에서 택시 드라이버가 보였지만 택시 드라이버만큼은 아니었던 것,

 

 

택시 드라이버에 비하면 영화 조커에 붙는 사회적 이슈는 억지에 불과하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조커가 사회적 반항을 일으킨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그 이슈는 영화의 노이즈 마케팅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오히려 택시 드라이버가 오늘날 개봉해서 선보였다면 이 영화는 이미 영화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을 것이다. 궁금하면 직접 영화를 보자. 

 

 



사실 조커를 보기 전에 내가 걱정했던 점은 바로 배트맨의 부재였다.
배트맨이 없으면 조커는 대체 무엇인가? 조커의 존재는 배트맨으로 비롯되었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주제는 매우 강력한 영화의 주제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커를 좋아하게 된 게 아닌가?


그러나 내가 DC 유니버스에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조커의 솔로 무대에서 보이는 방향성이었고
그래서 나는 지금 그다음 작품으로 다뤄질 후속작이 더 기대된다.
자살 닦이에서 만난 덜 완성된 조커가 아닌
제대로 된 '조커'가 탄생했고, 그리고 곧 그에 대항할 마사 드립을 치는 배트맨이 아닌
제대로 된 '배트맨'이 등장하는 것이다.